개그맨 김현철과 희극인의 쇠락

개그맨 김현철.

이제는 그다지 임팩트 없는 연예인으로 서서히 잊혀져가는 별로 안 웃기는 개그맨 정도로 기억될지도 모르는 인물이다.

그런데 얼마 전 TV프로에 출연했던 캡처 화면과 그에 대한 해설이 담긴 게시물이 돌면서 잠깐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방송의 내용은 지금 잘 나가는 배우인 황정민, 정재영, 신하균, 안재욱, 이휘재 등이 학창 시절에 김현철 밑에서 연기지도를 받았다는 것.

그 외에도 '김현철은 연극 연출과 연기에서 대단한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믿기지 않는다.. 정말이다..' '바보 개그맨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니..' 등의 내용이었다.

《서울예전 연극반의 주역이었던 청년 김현철. 데뷔전이 전성기라는 슬픈 현실》

이는 한물간 개그맨의 과거타령에 불과할 수도 있다.
또 그렇게 재능 있는 천재 연기자가 대중에게 그냥 바보 이미지로 각인된 건 김현철 본인의 책임일 수도 있고, 바보가 되기를 희망한 자신의 독특한 취향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바보'가 된 이유의 절반은 그의 탓이 아니다. 실제로 김현철은 개그계에서 떠오르는 별이 될 기회가 있었고, 그의 놀라운 재능이 발휘된 적이 있었다. 단 그 기간이 너무 짧았고, 너무 빨리 '예능 MC 전성기'라는 시대의 조류에 쓸려갔을 뿐이다.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학창 시절과 비교할 정도의 전성기는 아니더라도 김현철도 전성시대가 존재하긴 했었다. 김현철은 94년 SBS 개그콘테스트로 개그맨이 되었지만, 실제 주무대는 MBC였다. 96년 공채 개그맨이 된 그는 MBC 코미디 프로그램의 끝물에 데뷔한 개그맨이었다.

그가 얼굴을 알리게 된 계기는 '큰형님'이라는 코너였다.


● 큰형님

이 작품은 탤런트 김형일을 중심으로 일제시대 애국청년들의 일상을 담은 역작으로 울엄마, 허리케인블루와 더불어 그 당시 MBC 코미디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연재물로 자리 잡았던 코너였다.

반일 학생운동의 큰형님 김형일이 "남자란!"이라는 말을 던지는 동시에 비장한 대사를 준비하면 주변의 후배들이 감동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콩트로 마치 80년대 감성적인 운동권의 모습을 풍자하는 듯한 코너였다.

여기서 김현철은 김형일을 존경하지만, 현실적인 유혹과 공포에 눌려 일본 헌병에게 큰형님을 밀고하는 나약한 배신자 역을 맡았다. 김현철의 어벙한 말더듬이 바보연기의 시작이었던 이 작품에서 그는 짐짓 당당해 보이기 위해 팔짱을 끼려는데 그 팔짱이 미끄러지면서 팔짱조차 끼지 못하는 기발한 바보연기를 펼치며 그의 이름을 희극계에 알리기 시작하였다.



● 잃어버린 걸작을 찾아서


당시 성대모사로 개그계에 새롭게 부상하던 배칠수와 손발을 맞췄던 작품이다.
배칠수가 내레이션으로 변사 역할을 맡고, 김현철은 과거 무성영화의 주인공을 맡으며 한국적 괴기영화의 재해석으로 깊이와 웃음을 동시에 전해주던 말 그대로 코미디계의 '잃어버린 걸작'이었다. 이 작품에서 김현철은 물론 바보의 틀은 유지하면서 매회 다양한 캐릭터의 주인공으로 분하며 주연급 희극 연기자로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 1분 논평

이 작품은 MBC 코미디의 마지막 코너로 봐도 무방한 작품.
1분간 홀로 롱테이크로 데스크에 앉아 1인 슬랩스틱을 펼치는 작품으로 도구나 콤비, 리액션에 의존하던 기존 슬랩스틱의 관점을 송두리째 뒤집은 파격적인 작품이었다.

동적인 슬랩스틱의 개념을 정적인 차원에서 실현시킴으로써 그의 학창 시절 빛났던 연극적 실험을 반영한 문제작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사실상 이를 끝으로 방송 희극 연재물은 막을 내리게 되었고, 이제 막 시작하려던 김현철의 전성기도 끝나 버렸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각 방송사는 공채 코미디언을 중심으로 녹화방송 위주의 대표적인 콩트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었다. 배삼룡, 서영춘, 이기동, 구봉서로 시작된 희극의 전통은 각 방송사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오랫동안 살아있었다.

이제는 대세가 된 공개방송 개그의 장점이 즉흥성과 순발력, 그리고 관객과의 호흡이라면 당시의 세트 녹화방송은 그와 다른 희극적 완성도가 있었기 때문. 그러던 중 방송계에 변화의 조짐이 일기 시작하였다.

그 시작은 MBC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코미디 프로그램은 당연히 주말 저녁 골든타임에 방영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월요일 저녁에 방영되었는데 그 프로그램은 기존 방송과는 몇 가지 다른 시도가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수많은 공채 연기자들이 출연하는 대신 이휘재, 김한석, 최성훈 등 소수의 멤버들이 한 시간 내내 겹치기 출연하면서 모든 코너를 진행하는 방식이었다는 것.

소수의 '인기'개그맨으로도 쏠쏠한 성공의 가능성을 본 방송사는 이를 더욱 폭넓게 적응시키게 된다.

이제 굳이 개그맨이 아니더라도 시청자의 눈길을 끌 수 있는 트렌드 메이커만 있으면 코미디 프로그램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빅마우스 개그맨 한둘만 있으면 나머지는 가수나 배우 희극인이 아니더라도 그 누구라도 상관없다. 대충 대여섯의 수다와 그들을 아무 데나 풀어놓고 일상만 보여줘도 주말의 골든타임을 손쉽게 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게다가 이런 방식은 인력, 조직, 관리, 비용 모든 차원의 효용에서 기존 공채 희극인실을 능가할 수 있는 데다가 출연 패널에 따라 홍보 스폰서에 시청률까지 보장되니 일석이조 이상의 장점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방송의 격변 속에서 기존 희극인은 설곳을 잃었고 희극과 콩트 연재물의 시대는 끝이 났다.
쇼프로 MC, 패널 출연, 라디오 DJ, 6시 내 고향 리포터, TV쇼 진품명품, 인터넷 방송, 식당 주인.. 희극인들은 종전 후의 패잔병처럼 뿔뿔이 흩어졌다. 그중 몇몇은 시사프로그램 따위를 진행하면서 감상적인 멘트 몇 개로 정치적인 시류에 편승하면서 이전보다도 더욱 큰 사회적 성공을 맛보기도 하였지만 그건 극히 예외적인 소수였다.

《김경식의 끽도(좌) / 강호동, 이경애의 무거운 사랑(우)》

이제는 아마 그들이 다시 희극에 컴백하여 김경식이 끽도를 연기하거나 강호동과 이경애가 무거운 사랑을 연기한다고 해도 나 역시 재미없다고 리모컨을 던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끔은 머리를 거치지 않고 입가에서 맴돌다 툭툭 나오는 농담이 아닌, 오랫동안 고민되고 숙성된 웃음의 연기를 가끔은 보고 싶다는 것. 단지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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