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과 새끼고양이 '미스 햅(Miss Hap)'

"1952년, 한국전쟁에서 해병대 프랭크 프레이터(Frank D. Praytor, 1927~2018)상사가 태어난 지 2주 된 새끼고양이 '미스 햅(Miss Hap)'에게 스포이드로 우유를 먹이는 모습"

"벙커 힐 근처에 떨어진 박격포탄에 의해 죽은 어미고양이 곁의 새끼고양이를 해병대원들이 구했다. 새끼고양이의 이름이 '미스 햅(Miss Hap)'이 된 이유는 '나쁜 때에 나쁜 장소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한국으로 치면 '박복'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셈이다)"

 

▲ The marine and the kitten, Korean War, 1952

 

자세한 이야기


사진이 촬영된 정확한 날짜는 1952년 10월 18일. 한국전쟁이 휴전을 향해가면서도 전선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던 시점이다.

미 해병대 1사단은 1952년 8월경부터 서부전선에 위치한 벙커 힐(Bunker Hill)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의 임무는 중공군으로부터 고지를 사수하는 것.

아래의 영상은 당시 벙커 힐 지역의 전투를 기록한 것이다.


10월 6일, 중공군은 시간당 1,000발에 달할 정도의 곡사포와 박격포를 무지막지하게 쏘아대며 총공세를 펼쳤으나 미 해병대는 이곳을 필사적으로 지켜내고 만다.

▲ 현재의 벙커힐. DMZ에 위치해 숲만 무성하다.(N37 58’3.05" E126 44’23.93")

처음 저 사진이 화제가 되었을 당시에는 설명처럼 '어미 고양이가 중공군의 박격포탄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다르다.

한국전쟁 참전용사협회(KWVA)가 발간하는 잡지 'The Graybeards' 2009년 5월 판에서 프랭크 프레이터는 실제 사실을 아래와 같이 증언했다.

"전초부대로 나간 해병대원이 고양이가 울어대자 사살했고, 어미 곁에 있던 갓 태어난 새끼를 발견해 데리고 온 것"


사진을 찍은 시점에 '2주 된 새끼고양이'라고 한 것을 봐서는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잃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어미는 갓 낳은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심하게 사람을 경계하다가 총을 맞은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해병대원들이 고양이 고아들을 거두긴 했지만 이들은 미스 햅에게 실은 '빚을 진 셈'이었다.

미 해병대 홍보부는 사실을 말하면 부정적인 인식이 야기될 것을 우려해 '적의 박격포탄에 의한 것'이라고 이야기를 각색했고 프레이터 상사도 침묵했다.

아마도 어미고양이를 죽인 해병대원은 적에게 발각될 것을 우려했을 수도 있고, 혹은 격렬한 전투에 지쳐 고양이 울음소리에 예민해졌을 수도 있다. 잔인한 일이지만 오랜 전쟁은 사람의 마음을 그토록 황폐하게 만든다.

▲ 벙커 힐의 미 해병대 참호

미스 햅은 살아남은 두 마리 새끼고양이 중 한 마리였다. 다른 병사가 맡은 고양이는 침낭 속에 들어가서 자다가 뒤척이던 병사의 몸에 깔려 안타깝게도 죽어버린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미스 햅을 맡은 프랭크 프레이터 상사는 분유 캔을 따서 스포이드로 먹이는 등 자식처럼 고양이를 아꼈다. 어찌나 애지중지했는지 지켜보던 마틴 라일리 하사가 이 모습을 촬영한 것이 바로 사진의 탄생비화이다.

무럭무럭 자란 미스 햅은 곧 전투식량(C-ration)을 사료처럼 먹으며 짬타이거가 되어갔다.

▲ 컬러로 복원된 사진

참호에서 웅크리고 새끼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애잔한 사진은 프레이터 상사가 '월간 해병대(Leatherneck Magazine)'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사진과 함께 이야기를 보냈다가 1953년 AP통신과 뉴욕타임스 등 수많은 신문에 게재되며 특종이 되었다.

전쟁터에서 어미 잃은 동물을 구해내는 사진은 휴머니즘과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강렬한 장치였다. 전국 곳곳에서 격려의 편지가 쇄도하며 각종 상까지 수상하자 프레이터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이후의 이야기


프레이터 상사는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미스 햅은 한국에 남아 해병대 공보부처(PIO)의 마스코트가 되었다. 그녀에게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는데, 직원들이 종이를 구겨 휴지통에 던져 넣으면 점프해서 막거나 휴지통에 들어가서 방금 버린 종이를 물고 다시 책상에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덕분에 직원들은 쓰레기는 미스 햅이 없을 때 몰래 버려야 했다. 원조 집사였던 프레이터 상사도 업무상 잠깐 한국에 들어왔을 때 이런 미스 햅과 잠시 재회했다고 한다.

▲ 노년의 프랭크 프레이터 상사. 2018년 향년 90세로 별세했다.

미스 햅은 공보부처의 직원 중에서도 '콘라드 피셔' 상병을 마치 엄마처럼 따랐다. 한파가 닥쳐도 그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갔고 눈에 보이지 않으면 울어댔다. 밤이면 함께 침낭 속에서 잠들었고 그가 부르면 숨어있다가도 나타났다.

이런 미스 햅에게 '리트리버 캣(Retriever Cat)'이라는 또 다른 애칭이 붙었다. 한국에서 같은 타입의 고양이를 '개냥이'라고 호칭하는 것과 같다.

미스 햅만 콘라드 피셔 상병을 짝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피셔 상병 역시 이 고양이에게 완전히 빠져서 일리노이주 시세로에 있는 그의 집으로 미스 햅을 데리고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했다. 소시지와 육류 가공업체에서 근무하다 참전한 그는 고양이에게 항상 소시지를 줄 수 있는 준비된 집사였다.

미스 햅의 자란 모습은 시카코 트리뷴의 월터 시몬즈 기자가 1953년 2월 21일자 기사로 '귀염둥이 리트리버 캣'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덕분에 확인할 수 있었다.

▲ 콘라드 피셔와 '미스 햅'

사진 속 피셔 상병의 어깨에 올라탄 미스 햅은 화질이 나쁘지만 훌쩍 자란 모습을 볼 수 있다. 이후 이들의 이야기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피셔 상병을 따라간 것으로 추정된다.

'나쁜 때에 나쁜 장소에서 태어난' 미스 햅은 지구 반대편에서 잘 살았을까? 하긴 장소와 시간이 뭐가 중요할까,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주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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