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의 무관심이 현재의 자유 박탈로 돌아오다(홍콩)

- 대학가 '반환' 무관심 
- 대자보 의견란 인기 시들... '천안문' 벽보들만 


빅토리아 만이 내려다보이는 홍콩섬 서쪽 언덕에 자리 잡은 홍콩 최고의 명문 홍콩대학 캠퍼스에는 최근 큰 대자보판이 설치됐다. '홍콩 반환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이라는 글귀가 적힌 노란색 대자보에는 반환을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느낌이 적혀있다. 

"홍콩이 영국의 통치를 받은 것을 모두 치욕으로만 몰아붙일 수 없다. 영국이 없었다면 홍콩은 아마 지금 상하이나 톈진 정도이거나 아니면 더 낙후됐을지도 모른다. 홍콩의 새로운 행정부나 중국 관리들이 각성하지 않으면 진짜 치욕스러운 일은 앞으로 올지 모른다."(밍쭈이)

"왜 홍콩 반환을 경축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웡밍(영화배우)이 홍콩 반환에 기대를 건다고 말한 것도 이해 못하겠다." (아롱) 

"최근 가족회의를 열고 현재의 재산으로 이민 갈 수 있는 나라가 어떤 나라일까 논의했다. 나는 비겁하게 도망가고 싶지 않다. 다가오는 도전에 굳게 대응하겠다."(아무이)

 

누군가 "반환 축하"라고 쓴 위에 다른 이가 "멍청한 말 하지 마"라고 써놓았다. 대자보에는 볼펜을 달아 놓았지만 빈 공간이 많이 썰렁한 느낌이다. 학교 내 곳곳의 벽보에서 반환과 관련한 의견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벽보는 대부분 89년 천안문 사태 희생자를 추도하고 중국의 잔인함을 강조하기 위해 이달 초 설치해 놓은 당시의 사진과 관련 문건들로 채워져 있다.

교정 한쪽에는 5m 높이의 천안문사태 기념 조각물이 놓여있다. 고통스러운 표정의 중국 젊은이 50명의 얼굴을 새겨 천안문의 비극을 표현한 이 조각물은 지난달 말 홍콩에 반입돼 교내에 설치될 예정이었으나, 대학 쪽의 반대로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학생회관 2층의 학생회 사무실 입구에는 중국의 반체제 운동가인 왕단의 대형얼굴 사진과 함께 천안문 사태 관련 벽보가 많이 붙어있다.

학생회장인 패트릭 웡(22, 토목공학과 3학년)은 30일 1만개의 노란 리본을 만들어 홍콩 시민들에게 나눠줄 예정이다.
"노란 리본은 홍콩의 자유와 민주를 상징합니다. 중국에 대한 우리의 의지를 알리려 합니다" 
웡은 반환식 직후 벌어지는 민주화 요구 시가행진에 학생들의 참석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웡은 이 학교 1만 2천여명 학생 가운데 행진에 참가할 학생은 1%도 안되는 1백여 명에 그칠 것으로 예상한다. 대부분이 정치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홍콩 젊은이의 40% 이상이 홍콩 반환에 대해 "별 느낌없다"고 대답했다.

 

[한겨레, 1997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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