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멘 음악대를 표절한 '서울 가는 음악대'

● 서울 가는 음악대

- 신태산(申泰山)

 

옛날 어느 곳에 당나귀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주인은 늘 그 당나귀에다 곡식을 많이 싣고 서울 가서 팔았습니다. 이 당나귀도 젊었을 때에는 짐도 많이 실었었고 먼길도 잘 다녔습니다만 이제는 늙어 기운이 없어 조금만 실어도 얼마 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가엾게 생각하지도 않고 이 늙어빠진 당나귀를 내쫓아버렸습니다.

"인간처럼 무정한 것은 없구나. 내가 젊었을 때에는 그렇게도 저를 위하여 짐을 실어주었건만 이제 늙었으니 편히 쉬게는 하지 않고 내쫓다니. 이제는 쫓겨났으니 어떻게 살아가나" 하고 쫓겨난 당나귀는 혼자 생각하였습니다.

"옳지 옳지 서울 가서 음악을 하자"

'언젠가 한번 서울에 가니까 어떤 사람이 음악을 하는데 모두 손뼉을 치고 돈을 주더라. 난들 그까짓 음악쯤 못할까' 이렇게 생각한 당나귀는 곧 서울을 향하여 떠났습니다.

 

얼마 안 가서 당나귀는 늙은 개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너는 왜 이렇게 기운 없이 길바닥에 드러누웠니"하고 당나귀가 물었습니다.

"나는 여태까지 우리 주인집을 지켜주고 있었단다. 그렇지만 주인이 그러는데 이젠 저 개도 늙었으니까 잡아먹겠다고. 그래서 달려 나오긴 했지만 뭐 먹을 게 있어야지. 이집저집 기웃기웃하면 저놈 도둑개라고 뭇매만 맞는단다"

"응, 나도 여태까지 일해주던 주인에게 쫓겨나서 음악이나 해서 벌어먹으려고 지금 서울 가는 길이란다. 너도 소리할 줄 알지 않니, 우리 같이 가자."

당나귀와 개는 길을 떠났습니다. 얼마를 가려니까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길가에서 볕을 쪼이고 앉아있었습니다.

"넌 여기서 뭘 하고 있니"

"난 주인님 쥐를 잡아주고 있었단다. 그런데 이제는 늙어서 쥐도 잘 못 잡는다고 쫓겨났단다. 그래도 배고 고프면 혹시 밥찌꺼기나 남지 않았나 하고 들어가면 요놈의 고양이 또 뭐하러 왔냐고 몽둥이로 때린단다"

"저런, 얘 우리를 따라오너라. 우리는 서울로 음악 하러 가는 길이란다"

당나귀와 개와 고양이는 얼마 가지 않아서 지붕 위에 수탉 한 마리가 앉아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는 거기서 뭘 하고 있니" "난 새벽이면 주인을 깨워주고 밥을 얻어먹고 있었단다. 그런데 내일은 귀한 손님이 온다고 나를 잡는대."

"그럼, 너도 우리를 따라오너라. 우리는 서울 가서 음악해 벌어먹는단다."

 

이 네 친구는 부지런히 걸었지만 반도 가지 못해서 해가 저물었습니다. 할 수 없이 이곳저곳 잘 곳을 찾다가 어떤 집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창문이 높아서 들여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당나귀가 엎드리고 그위에 개가 타고 개 등에 고양이가 뛰어 올라앉고 닭이 고양이 등에 날아올라가서 방안을 엿보았더니 다섯 사람의 도둑놈들이 고기를 구워놓고 갖은 반찬을 다 차려놓고 먹고 있었습니다.

배가 고프던 닭 목구멍에서 '꾸르륵, 꾸르륵'소리가 난 것도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가만있자, 저걸 어떻게 빼앗아 먹을까" 하고 당나귀가 머리를 기울이고 기다란 귀를 쫑긋거렸습니다.

"옳지 옳지 얘들아 우리 여기서 음악을 시작하자. 그래서 저놈들이 놀라 달아나거든 들어가서 뺏아먹자 응? 자 시작!"

음악은 시작되었습니다.

당나귀는 "엉으 엉으"
개는 "멍멍"
고양이는 "야옹야옹"
닭은 "꼬꾜우 꼬꾜우"

안에서 먹고 있던 도둑놈들이 깜짝 놀랐지요. 그저 줄달음을 쳐서 달아나버렸습니다. 물론 이 네 친구가 그 집을 차지한 것을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버려놓았던 음식을 모조리 먹고 당나귀는 마당에서 개는 문턱에서 고양이는 걸상 밑에서 닭은 걸상 위에서 잤습니다.

밤이 깊어서 도둑놈들이 대체 그게 무슨 소리였던가 하고 그중 대장 한놈이 가만히 그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방에 들어오는 놈의 다리를 개가 벼락같이 물어뜯었습니다. "에크!" 하고 놀라 뛰는 놈을 고양이가 뛰어올라 뺨을 할퀴었습니다. 문밖으로 나오는 놈을 당나귀가 보기 좋게 뒷발로 걷어찼습니다. 걸상 위에 앉았던 닭은 "꾜꼬우~" 하고 목청 좋게 울었습니다.

대장 도둑놈은 그만 혼이 나가서 달아났습니다.

"야 거긴 이제 다시 갈 생각도 마라. 아이고 아주 혼났다. 아 글쎄 내 말 좀 들어봐. 방에 들어가니까 한놈이 덥석 다리를 물어뜯지 않겠냐 이거 봐 글쎄 여기를. 깜짝 놀라서 물러서니까 눈을 샛별같이 뜬 놈이 번갯불같이 얼굴을 긁어 뜯더라고 이것 봐 여기 뺨을. 그래서 마당으로 뛰어나오니까 아주 큰 놈이 주먹으로 배를 치는데 아마 그놈들의 대장인지 그놈이 저놈 잡아오너라~ 하고 호령을 하더라고"

결국 이 네 친구는 서울도 가지 않고 그 집에서 잘 살았답니다. (끝)


●대담한 표절

 

1936년 9월 30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서울 가는 음악대'는 1819년 그림형제가 쓴 '브레멘 음악대(Die Bremer Stadtmusikanten)'를 그대로 베꼈다.

주인이 늙은 개를 잡아먹는다는 부분에서 '혹시 지명과 현지 풍속에 맞춘 번안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번안이라면 원작자인 그림형제의 이름을 뺄 리가 없다.

 

《Walt Disney: The Four Musicians of Bremen (1922)》

브레멘 음악대는 1823년에 유럽권에서는 이미 유명한 동화가 되었고 1922년에는 월트 디즈니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기도 하였을 정도로 유명했지만 당시 아시아권에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았는지 편집부에서 걸러지지 못하고 신문에 게재되었다.

 

하지만 이후 '신태산(申泰山)'이라는 소설가의 이력이나 동화는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봐서 작품을 알아본 독자들의 거센 항의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유명해도 너무 유명한 작품을 지명만 바꾸고 그대로 올린 대담한 표절이다.

 

《조선일보 1936.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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