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인권숲에 있는 통감관저 터의 옛모습

남산 아래에 위치한 서울특별시 소방재난본부 앞에서 서울유스호스텔로 올라가는 길 중턱에는 '남산인권숲(지도)'이라는 근린공원이 있다.

이곳은 중앙정보부 6국 수사실이 있었던 이유로 과거 부당했던 인권침해 수사를 기억하고자 '인권숲'이라는 명칭이 붙어있는데, 공원 내에는 '통감관저터'라는 표시석도 설치되어 있다.

지금은 일제시대의 흔적이라고는 표시석 공원뒤쪽의 일본식으로 쌓은 옹벽밖에 찾아볼 수 없지만, 이곳은 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 총리대신 이완용(李完用)데라우치 마사타케(寺内正毅) 한국통감을 만나 한일합병조약에 도장을 찍었던 역사의 어두운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 남산인권숲 내에 있는 통감관저터 표시석. 오른쪽 뒤로 보이는 옹벽과 석축만 일제시대의 흔적이다.

아래는 통감관저(統監官邸)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시절의 사진들이다.

▲ 1909년 2월 6일, 대한제국 황제 순종(純宗) 일행이 통감관저를 방문하고 있다. 현재 건물은 사라졌지만 관저로 올라가는 도로형태와 오래된 나무는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 현재의 모습. 시야가 가려졌지만 빨간 화살표가 가리키는 두 그루의 나무들이 위 사진이 찍힌 100년 전에도 있었던 은행나무와 느티나무이다.

▲ 도로 위로 올라가서 아래쪽으로 바라본 모습.

왼쪽의 느티나무(고유번호: 서2-6, 450년)와 오른쪽의 은행나무(고유번호: 서2-7, 400년)는 둘 다 수령 400년을 훌쩍 넘은 역사의 산 증인으로 1996년 8월 16일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 1909년 2월 6일, 마차를 타고 통감관저 정문에 도착한 순종 일행. 이날 순종황제는 오전 11시 40분에 통감관저를 방문해 오후 2시 30분에 궁으로 돌아갔다.

순종이 이날 통감관저에 온 이유는 1909년 1월 7일부터 1월 13일까지 대구, 부산, 마산, 대전을 방문한 남순행(南巡幸) 당시 부산에서 일본군함을 사열할 수 있도록 군함을 보내준 일본황실에 호의를 표시하기 위해 일본에 보낼 칙사를 한국통감과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칙사로는 총리대신인 이완용(李完用)이 일본에 가고 싶어 했지만 궁내대신 민병석(閔丙奭)으로 결정되었다.

▲ 마차의 창문 너머로 초대 한국통감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가 마중 나온 모습이 보인다.

이토 히로부미와 통감관저를 함께 수록한 엽서. 사진 속에서 현재 남아있는 것은 은행나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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