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 타임캡슐/낡은 사진과 신문 BesTan | 2021. 2. 11. 16:53
이완용(李完用). 현재 한국에서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매국노의 대명사이다. 살아생전에는 부귀영화 속에서 큰 권세를 누렸고, 죽어서는 사이토(齋藤實) 제3대 조선 총독 등 50명의 장례위원과 1,300여 명의 조문객이 참석한 가운데 그의 3천 평짜리 저택이 있던 옥인동 19번지부터 광화문까지 어마어마한 장례행렬이 이어졌다. • 관련글: 이완용의 임종, 1.5km의 장의 행렬과 영결식 ■ 동아일보의 돌직구 사설 그가 사망한 다음 날, 동아일보는 1926년 2월 13일 자 1면에 '무슨 낫츠로(낯으로) 이 길을 떠나가나'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는다. 비록 겉보기에는 성대한 장례식이었으나 민중과 언론의 속내는 그렇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일제의 귀족인 이완용을 비하하는 것을 조선 총독부는 가만히 두고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