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 정리 BesTan | 2022. 5. 23. 23:55
게시글 이전하였습니다. 역사적인 사진의 뒷이야기 ⑪ 월남 사이공 거리의 미소녀 | earthwow.org 공산화되기 전인 1972년, 월남(베트남공화국)의 수도 사이공(현재의 호치민) 거리에서 포착된 자전거를 타고 가던 소녀의 모습. earthwow.org
카테고리 : 정리 BesTan | 2022. 5. 6. 23:18
베트남국은 1949년부터 1955년까지 프랑스의 괴뢰국이었던 베트남 공화국(월남)의 전신으로 존재했던 나라이다. 국가 수립 후 베트남 최후의 황제인 바오다이(Bảo Đại, 1913~1997)가 국가원수로 재임했으나, 1955년 국민투표를 통해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일반적으로 베트남 공화국과 같은 국가로 취급한다. 아래의 사진은 베트남국 시절인 1954년, 사이공에 입항한 USS 로체스터 CA-124(USS Rochester CA-124) 중순양함의 해군 수병이 촬영한 사진이다. ▲ 사이공에 도착한 USS 로체스터. 당시 사이공을 방문한 배 중 가장 규모가 큰 배(1만 3700톤)로 기록된 USS 로체스터는 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진수된 중순양함으로 6.25 전쟁(한국전쟁)에도 참..
카테고리 : 정리 BesTan | 2021. 10. 30. 21:46
게시글 이전하였습니다. 월남 패망 후 '보트피플'의 처절한 모습 | earthwow.org 1975년 4월, 월남(베트남 공화국)의 패망이 가까워옴에 따라 월남 국민들의 국외 탈출도 시작되었다. 오랜 기간 싸워온 적에 대한 공포는 이들의 발길을 국경 밖으로 이끌었고, 심지어 광활한 망 earthwow.org
카테고리 : 정리 BesTan | 2021. 9. 29. 19:37
베트남 공화국(월남)의 수도였던 사이공(Sài Gòn, 柴棍)은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군에 함락됨에 따라 호찌민시(Ho Chi Minh City)로 변경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아래의 사진들은 1967년부터 1969년까지의 사이공 거리와 사람들의 모습이다. ▲ 모여서 점심을 먹고 있는 사이공의 여성 노동자들. ▲ 퇴근한 노동자들이 집에 가기 전에 옷에 묻은 먼지를 닦아내고 있다. ▲ 사이공 중심가에서 과일주스를 판매하는 노점상. ▲ 부모님의 가게에 앉아 공부를 하는 아이들. ▲ 길에서 과일을 팔고 있는 여성. ▲ 사이공의 어린이들이 길거리에서 돌을 가지고 게임을 하고 있다. ▲ 시클로(Cyclo, 인력거)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청년. ▲ 수선점에서 손님이 맡기는 옷을 살펴보는 주인. ▲ 사이공 거..
카테고리 : 정리 BesTan | 2020. 10. 31. 09:00
게시글 이전하였습니다. 월남 공산화와 재교육 수용소 | earthwow.org 이렇게 교육생들은 월남 정부를 위해 일한 시간에 비례해 3년에서 10년의 교육을 받았으며, 최대 15년까지 수용소에 머무른 사람도 있었다. 또한 모든 월남인들 3명 중 1명은 재교육 수용소에 들 earthwow.org
카테고리 : 타임캡슐/낡은 사진과 신문 알 수 없는 사용자 | 2016. 6. 6. 15:03
1975년 3월 27일, 월남의 수도 사이공에서 어린 학생들이 경찰을 향해 돌을 투척하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사진 속 성난 학생들의 시위 모습을 마치 남일 보듯 웃으며 감상하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망해가는 나라의 기운이 전해져 온다. 학생들이 거리에 나온 이유는 월남 정부가 징집 연령을 17세로 낮추면서 당장 입대하게 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이것은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이 되었다는 의미였지만, 학생들은 자신들이 지킬 가치가 없다고 믿는 나라를 위해 희생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이로부터 불과 한 달여 뒤인 1975년 4월 30일, 월남은 공산화되어 지도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시위를 벌였던 학생들이 환호할만한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위대한 통일조국의 징집 연령이 종전 그대로 18세로 유지되었다..
카테고리 : 타임캡슐/낡은 사진과 신문 BesTan | 2013. 12. 24. 07:00
베트남의 경제, 상업의중심지로 유명한 '호찌민 시(市)' 이 곳은 월맹(북베트남)이 월남을 적화통일 하기전까지는 사이공(Saigon)이라고 불렸으며 월남의 수도였습니다. 아래는 적화통일 이전인 1973년의 사이공 풍경입니다. 힐튼 사이공, 베트남 포로 수용소 1973년 사이공거리 월남의 군사력은 양과 질에서 월맹을 압도하였지만, 끊임없이 반전시위가 이어졌고 사회지도층의 평화선동에 넘어가 적과 맞설 의지가 사라진 월남국민들에게는 무용지물이었습니다. 1975년 4월 27일경, 사이공은 폭탄테러가 일어나는 등 어수선한 모습이었습니다. 베트콩이 발사한 로켓으로 파괴된 잔해에서 소지품을 찾고있는 사람들 대공세를 앞두고 피난을 떠나는 사이공 시민들 배에 탑승하는 피난행렬 헬기에 탑승하려는 피난민들 미국 대사관에 난..